배우 예수정(독어독문학 73), "연기는 제 인생을 밝힌 헤드라이트입니다"
  • 작성일 2024.09.06
  • 작성자 고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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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 PEOPLE
천만 영화 4편에 출연한
연극계 베테랑 배우
배우 예수정(독어독문학 73)
연기는
제 인생을 밝힌 헤드라이트입니다

여기,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들에 자주 보이는 명배우가 있다. 〈도둑들〉, 〈부산행〉, 〈신과 함께〉 시리즈 등 무려 4편의 천만 관객 영화에 출연한 예수정 교우다. 여리고 애틋한 얼굴, 냉철하고 강렬한 얼굴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는 작품마다 인물의 내면을 선명하게 표현해 내며 관객들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고대에서 배우의 길을 확신했다는 그에게 지금까지의 여정과 꿈에 대한 대화를 청했다.

 

연극에 빠져 버린 명랑 문학 소녀

어린 수정은 명랑한 골목 대장이었다. 배우인 어머니의 친구들로 북적이는 집을 피해 놀이터에서 해가 질 때까지 놀았다. "아직도 가끔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꿈을 꿔요. 그네 줄이 뒤로 넘어갈 때까지 타다가 뛰어내리곤 했죠. 친구들과 구슬치기나 고무줄놀이도 자주 했는데, 뭐든 잘해서 인기 최고였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책과 가까이 지냈다. 특히 릴케와 괴테의 팬이었다. 독일 문학의 낭만성에 반해 독어독문학 전공으로 고려대학교에 들어간 예 교우에게 문득 '연극'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독일의 대문호 브레히트가 남긴 "극장은 시민의 계몽 공간"이라는 말이 그의 몸과 마음을 깨웠다.

"요즘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단어지만, 당시 제게 '계몽'은 '내 앞의 전등 하나를 켜는 일'로 느껴졌어요. 그렇다면 극장은 그렇게 이마에 전등을 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겠구나. 나를 환한 길로 인도하는 곳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연극 동아리 '고대극회'와도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 "신입생 때 극회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환영회 때 막걸리를 마시기 싫어 집에 바로 돌아갔어요. 그러다 3학년 때, 제가 배우 딸이라는 얘기를 들은 선배들이 '이 작품 한번 해 봐'해서 다시 들어간 거예요."

고려대학교와 독일에서, 배우고 또 배우다

극회 선배들로부터 기본기를 배웠다는 그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 배우의 길을 준비했다. "장두이 선배님은 제가 연극을 잘 모르던 시절 《고대 희랍 비극》같이 두꺼운 책들을 막 건네 주고 가셨어요. 고금석 선배님과는 독일 문화원 소속 극단 프라이에 뷔네(Freie Bühne)에서 첫 연극 작업을 했고요. 크게 웃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을 될 때까지 시키셨죠. 연기 수업을 제대로 받았습니다."

이후 유덕형 연출의 〈봄이 오면 산에 들에〉(원작: 최인훈)에 캐스팅되면서 한 번 더 연기에 눈을 번쩍 떴다는 그는 1983년부터 1991년까지 독일로 긴 유학을 떠났다.

"선배들의 가르침으로 연기 공부의 밭갈이가 된 후라 유덕형 선생님의 말씀이 빠르게 이해됐어요. 작품을 마치고는 확신이 들었죠. 내가 정말 무식하구나, 공부를 더 해야 되겠다."

브레히트의 나라 독일에서 배운 것은 연극에 대한 전폭적인 열정, 그리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삶의 태도였다. "머리에 균열이 가는 걸 느꼈어요. 강의보다도 학생들이 토론하는 방식, 하나의 작품으로 가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가는 작업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생활 면에서는 환경을 생각하는 합리적인 습관, 그리고 유학 온 가정들과 열었던 파티 등 거창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배운 게 참 많아요."

담장 앞에 앉아 옆을 바라보는 예수정 배우"모든 작품은 늘 고비를 만나요. 인물과 나 사이에 벽이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 벽은 '행복한 벽'이에요. 결국 열린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에요."

해석의 장인, 배우로 살아온 45년

귀국하고 본격적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 간 예수정 배우는 매 작품과 배역마다 진실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2022년 MBC 연기대상 여자 조연상(〈멧돼지 사냥〉), 2020년 제21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69세〉), 2018년 제2회 더 서울 어워즈 여우조연상(〈신과 함께 — 죄와 벌〉), 2018년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여우주연상(〈행복의 나라〉), 2017년 제27회 이해랑연극상 등 의미 있는 상이 주어졌다.

TV, 영화, 연극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했지만 그의 고향은 역시 연극이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연극을 할 때 가장 순수하고 치열하게 작업하기 때문이다. 그가 제27회 이해랑연극상을 어떤 상보다도 자랑스럽게 기억하는 이유다.

"이해랑연극상은 잘했다고 주기보다 '연극이라는 장르와 얼마나 진심으로 동행했는가'를 보고 주는 상이에요. 연극하는 사람들이 '우리 식구'라고 인정해 주시는 거죠. 고금석 선배님께 시상식 축하 말씀을 부탁드렸더니 말씀 대신 노래를 불러주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진행을 맡았던 손숙 선배님께서는 '절대 잊히지 않을 시상식'이라고 해 주셨어요."

우리 모두 자기만의 산티아고 길을 걸어갑니다

수많은 작품을 통과하며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탐색했을 인간 예수정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그는 우리 모두가 결국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평생 걸어가고 있는 인생의 '까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가 있어요. 가끔 그 길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점검하곤 하죠. 목표는 부끄러우니까 비밀로 할게요. 하지만 서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모두 비슷한 목표를 향해 가고 있을 거예요. 내가 어떤 삶을 살다가, 죽음이라는 고지를 어떻게 넘어갈 것인지에 대한 얘기니까, 똑같지 않겠어요?"

사회에 나가기 전, 앞으로의 삶을 한창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예 교우는 진리의 상아탑, 고려대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의지하기 바란다고 당부한다.

"제가 졸업할 때 김상협 총장님께서 '호랑이는 굶어도 풀을 먹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독문과 박종서 선생님께서는 '사회에 나가거든 바보가 돼라'고 하셨죠. 마이동풍처럼 지나갈 수 있는 말들이지만 그 말들은 아직 제 안에 남아 있어요. 듣는 순간에는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 있어도, 지금 학교에서 선생님들께 들은 이야기들이 나중에 반드시 힘이 될 거예요."

"선생님, 선배님, 후배, 동료 등 모든 분께 누가 되지 않도록 저를 돌아보는 귀한 계기로 삼겠습니다." 예 교우가 가장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이해랑연극상의 수상 소감이다. 소감에서 드러나듯, 프로 연기자로 살아온 긴 시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새롭게 구성해 가는 태도를 그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도 진중하게 연극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말하던 예수정 교우의 목소리와 눈빛이 오랜 잔상을 남겼다.

예수정 배우 유튜브 영상링크 썸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