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홀딩스 전무 이유경(영어영문학 86), '철의 여인'이 묵묵히 걸어온 최초의 길
  • 작성일 2024.09.06
  • 작성자 고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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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 People
최초의 포스코 계열사 여성 CEO 역임
포스코홀딩스 전무 이유경
(영어영문학 86)
'철의 여인'이
묵묵히 걸어온 최초의 길

책상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이유경 전무2020년, 포스코 그룹은 계열사인 포스코엔투비의 수장으로 이유경 사장을 선임했다. 반세기 포스코 역사상 최초의 여사장이었다. 그는 엔투비 사장으로 3년간 일하며 회사의 매출을 6천억대에서 무려 1조 1천억대로 수직상승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2024년, 포스코 그룹의 지주회사인 포스코홀딩스의 경영지원팀장(전무)으로 다시 부름을 받았다. 강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중공업, 여성 비율이 높지 않은 포스코에서 4자녀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이뤄 낸 성과와 함께 그에게는 '진정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고대 영문과에 가면 저 시계탑 건물에서 공부할 수 있어!"

전라도 진도에서 태어나 광주여고에서 공부하던 고등학생 이유경에게 먼저 서울로 유학 간 오빠가 캘린더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 순간, 그는 운명처럼 고대와 사랑에 빠졌고, 주저없이 고대를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고3이던 1985년 겨울, 원서를 내러 처음 서울에 올라 왔어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 순간, 난생 처음 본 노을 내리는 한강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마치 서울과 고대가 저를 환영하는 기분이었달까요?(웃음)"

고대에 와서는 영문과 내 학회 SES와 한일문화연구회 활동을 하며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다."정말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어요. 당시 고대에 여학우가 워낙 적어서 걱정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적은 수의 여자 선배들이 너무 멋있었고, 든든하게 우리를 챙겨 줘서 아쉬운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자랑스러웠죠. 그때 본 당당한 여자 선배들의 모습이 이후로도 제게 좋은 영향을 끼쳐 온 것 같아요."

최초의 대졸 공채 여직원

그가 졸업하던 1990년까지만 해도 일반 대기업에서는 여학생을 채용하지 않았다.

"처음엔 외국계 회사에 취업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포스코 그룹에서 전국 일간지 1면에 '여학생을 채용하겠다'는 전면광고를 게재했죠. 여성들에게도 회사가 결혼하기 전에 스쳐가는 곳이 아니라, 진짜 꿈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되게 하겠다, 업무 보조가 아닌 진짜 일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읽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몰라요."

그는 그룹의 첫 대졸 여학생 공채에 도전, 합격하면서 수출 부서에 배정받았다.

"여직원이 수출부에 온다는 자체가 파격인 시대였고, 그런 파격이 현장에서는 여전히 낯설 때였죠. 여직원들이 당번을 정해 남자 상사들의 책상을 닦고, 물컵에 물을 채우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는데 저희 신입 직원들이 항의해서 결국 문화를 바꿨어요. 포스코가 먼저 바꾸니 다른 대기업도 따라 바뀌더라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이 느껴졌죠!"

인터뷰 중 답변하는 이유경 전무"저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에요.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책도 읽고 코칭도 받고, 주변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았죠. 부족함을 아쉽게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채울까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원소주기율표의 거의 모든 광물을 취급했죠

여직원은 처음이라는 수출부서에서 일에 매진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후엔 커리어를 넓히기 위해 수입부서에 자원했다. 제철에 필요한 광물의 수출과 수입을 두루 겪은 후에는 거대한 중장비 설비 업무를, 다음에는 광물 원료 부서에서 업무를 했다.

"철강재 수출 10년, 설비구매와 원료구매를 한 20년 하다 보니까 지금은 지구 땅속에 있는 광물들은 제가 다 취급을 해 본 것 같아요. 고교 시절, 화학을 배우면서 '이런 학문을 내가 대학시험 끝나고 써먹을 수 있을까' 했는데 원료 구매를 하면서 석탄, 철광석은 물론 니오븀, 몰리브덴 등등 원소주기율표에 기호로만 존재하던 거의 모든 광물을 다뤘죠. 역시, 배워서 쓸데없는 학문은 없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웃음)"

원료수송그룹장, 광석그룹장 등 여성이 수장을 맡은 적 없는 묵직한 조직의 리더를 훌륭히 수행해 내며 신임을 얻은 그는 마침내 그룹의 첫번째 여성 CEO로 임명됐다.

회의 중 발언하는 이유경 전무

내가 잘해야 여성 후배들에게 길이 열린다는 생각

포스코 그룹의 첫 여성 CEO가 됐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회사가 저를 믿어 주고,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어요.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좋은 성과, 나아가 나만이 할 수 있는 결과물을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최초의 타이틀을 달게 된 제가 잘해야 여성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여자 후배들에게 동기 부여가 될 수 있으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컸어요."

부임 후 2020년 6,000억이었던 포스코엔투비의 매출은 2021년 8,600억, 2022년 9,800억, 그리고 2023년 1조 1,000억으로 기록적으로 성장했다.

"엔투비에서 일하면서 나를 믿어 주는 구성원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어요. 1조가 넘는 기록을 세우고 직원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큰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묵묵히, 조용한 열정으로 걸어온 개척자의 길

마지막으로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며 분투하는 여성 후배들에게 해 주고픈 이야기를 물었다.

"지금 이 회사를 34년째 다니고 있는데, 아이 넷을 육아하는 데 든 시간은 최대 10년 정도라고 생각해요. 그 정도의 시간을 버티고 인내한다는 생각으로 이겨내면 이후로는 꿈을 훨씬 더 많이 펼칠 수 있어요. 젊은 여성 후배들에게는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직장 생활을 나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고 함께 힘을 모아 이겨 내자'라고 자주 말해요.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모자랐지만 성실하려고 애쓰는 태도, 늘 책을 읽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는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성실히, 담담히, 때론 맹렬히 그는 개척자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뜨겁게 분투하며 열어 온 길은 수많은 후배들에게 용광로처럼 뜨거운 용기를 전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