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개미마을. 정겨운 벽화를 감상하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저 멀리 도시의 탁 트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인왕산과 맞닿아 있는 이 작은 마을에는, 창을 통해 아늑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유정은 교우의 명상 센터 '마보홈'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마음챙김 명상 앱 '마보'를 런칭한 유 교우를 만나 보았다.
마보 홈 외관
심리학과 고려대,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유 교우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신이나 사람의 마음, 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다거나 강한 종교적 배경이 작용한 것이 아님에도, 어린 유 교우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온통 원론적인 질문들이었다.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세상은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하고 생각할까 등등, 뭐 이런 걸 생각하면서 심란해했던 기억이 나요. 제겐 오히려 주변 친구들이나 부모님, 어른들이 이런 주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게 더 신기했어요. 너무 중요한 문제인데 다들 왜 관심이 없지? 혼자 생각했죠.”
유 교우는 고려대에 두 번 입학했다. 영어교육과 97학번으로 한 번, 이듬해 심리학과 98학번으로 다시 한 번. 고등학교 때부터 심리학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재수를 강행했고, 그의 두 번째 선택은 여전히 고려대였다.
“저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자랐어요. 그런데 영교과로 입학했을 당시 친해진 친구들 중에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죠.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나온 모습 그대로, 여기저기서 사투리가 들리고 조금 투박하기도 한, 고려대만의 다양성과 연합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다시 고려대에 왔습니다.”
마음에 대한 관심 하나로 걸어온 길
심리학 공부를 계속 할수록 그는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고 보려면 랩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학문을 이어 가기 전에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재학 시절 인턴을 거쳐 졸업 후 바로 직장 생활에 뛰어들었다.
“성영신 교수님이 가르치신 소비자 심리, 마케팅 수업을 굉장히 흥미롭게 들었어요. 그 분야로 일을 해 보고 싶어서 외국계 기업에 마케팅 리서처로 취업을 했죠. 1년 정도 근무하면서 외부 마케팅뿐 아니라 내부 조직 문화와 리더십이 직원들의 만족도와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게 됐어요. 그래서 인사 조직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해 보고자 영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유학 후 인사 조직 컨설턴트로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며 '구조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유 교우는, 조직 심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갈 정도로 '내면의 변화'라는 주제에 몰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 구글 엔지니어인 차드 멩 탄의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라는 책을 통해 마음의 훈련법, 명상을 접하게 됐다.
명상 클래스를 진행하는 모습
"자신의 내면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 온 가치관들을 다시 보기 시작하면 좋겠어요. 그런 훈련을 통해 자기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거예요."
명상을 통해 온전한 나의 마음으로 돌아오다
“명상은 신비주의적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신경과학과 뇌과학에 근거한 매우 적극적이고 효능적인 마음의 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밤새 책을 읽고 다음 날 바로 차드 멩 탄에게 이메일을 보냈죠. 그리고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트레이닝을 받고 국내에 프로그램을 도입했어요.”
명상을 통해 유 교우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확대되고 시야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는 명상을 "온전한 '나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연습"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몸이나 감정이 아닌 머릿속에서만 살아가잖아요. 하지만 매일매일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상태, 생각이나 감정,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다 보면 세상과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어요.”
유정은 대표
연결될수록 단단해진다
유 교우는 명상 훈련을 할 때 '혼자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깊이 느낄수록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이유로 '마보 커뮤니티'는 항상 활발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우리가 체육관에 가거나 크루 활동을 통해 운동할 때 더 잘되는 이유와 비슷해요. 명상도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어요.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순간, 그 무게가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거든요. 우리는 서로의 지지와 응원과 격려를 통해 치유받고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이런 요소를 앱 안에 녹여 넣고 싶었어요.”
유 교우는 후배들에게 실패를 다루는 경험이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 비판과 평가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는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저는 젊은 후배들이 자신의 내면에 대해 탐구하는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쌓아 온 가치관들을 다시 보기 시작하면 좋겠어요. 그런 훈련을 통해 자기만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의 말처럼, 명상은 개인뿐 아니라 서로를 연결하는 강력한 도구다. 그래서 유 교우는 더 많은 사람이 자기 마음과 생각의 주인이 되도록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