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진 명예교수, 고려대학교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의 힘
  • 작성일 2024.11.01
  • 작성자 고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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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진(국어교육과 명예교수)
고려대학교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의 힘

본관 옆 길을 걷는 고형진 교수

2025년 개교 120주년을 맞는 고려대학교는 한국의 고등 교육기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학교로서, 긴 시간 동안 강한 정체성을 견고하게 유지해 왔다. 어느 조직이든 시간이 많이 흐르면 정체성이 변하거나 응집력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고려대학교는 개교 이래 고유의 색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구성원들의 결속력도 변함없이 유지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민족 사학'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다. 고대가 유지해 온 강한 정체성과 그것의 보편적 인식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우선 고대의 상징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려대학교의 대표적 상징은 크림슨색과 호랑이이다. 빨간색은 정열을 촉진하여, 구성원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긍심과 애교심을 불태우게 한다. 호랑이는 구성원들에게 용맹함을 불어넣고 위엄 있는 자태를 심어 준다. 두 상징은 고대의 정체성을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고, 구성원들을 힘 있게 묶어 준다. 학교의 중요 행사 때면 크림슨빛 천에 황금빛 호랑이 얼굴이 새겨진 깃발과 현수막이 걸리는데, 이때 캠퍼스는 가장 고대다운 인상과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속에서 고대 구성원들은 강한 힘을 얻고 하나가 되는 것을 느낀다.

크림슨색과 호랑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연결된다. 빨간색은 정열적인 한국인의 기질에 잘 맞는 색상으로,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의 유니폼 색상으로 자주 채택된다. 전 국민이 즐기는 대표 스포츠인 축구의 대표 선수 유니폼이 줄곧 빨간색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호랑이는 20세기 초까지 한국에 서식했던 동물로 한국의 역사와 전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 온 친숙한 동물이다. 그래서 88 서울 올림픽 때 호랑이가 공식 마스코트로 채택되기도 했다. 고대의 상징인 크림슨색과 호랑이가 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연결되면서 고대의 정체성은 한국인들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된다.

크림슨색과 호랑이가 학교 당국이 만든 상징이라면 문학과 예술 작품은 학교의 개별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상징이다. 고대 출신 문인들은 고대를 소재로 문학작품을 많이 썼다. 그 작품들 속에서 문학적으로 잘 형상화된 고대의 정체성은 큰 호소력을 지녀 후대의 고대인들에게 마음속 깊이 전해진다. 작품에는 대중적인 응원가도 있고,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시와 소설도 있다.

가장 오랜 기간, 널리 불리고 있는 고대의 응원가로는 〈막걸리 찬가〉가 있다. 이 노래는 이흥렬이 작곡하고 조지훈이 작사한 고대의 공식 응원가를 개사한 곡인데, 원본 응원가는 잘 안 불리는 반면, 이 노래는 애창된다. 고대의 정체성을 노랫말로 잘 구현했기 때문이다.


마셔도 사내답게 막걸리를 마시자 맥주는 싱거우니 신촌골로 돌려라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취하도록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 같이 마시자
고려대학교 막걸리대학교 아 고려대학교 막걸리대학교
막걸리를 마셔도 사내답게 마시자
만주 땅은 우리 것 태평양도 양보 못한다


벤치에 앉은 고형진 교수

고형진 명예교수

노랫말은 순우리말로 쓸수록 호소력이 커진다. 한자어는 의미가 머리로 전달되지만, 순우리말은 가슴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막걸리 찬가〉는 쉬운 우리말로 운율과 의미를 잘 조직화하고 있다. 이 노랫말엔 '마시다'의 활용형이 여섯 번, '사내'가 두 번 반복된다. 부드러운 음가의 유성자음 앞뒤로 'ㅅ'음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노래 부르는 내내 상쾌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막걸리 한 잔을 쭉 들이켰을 때의 속 시원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한다. 권주와 음주의 낭만을 전하는 노랫말은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우리 영토의 회복과 확장에 대한 염원으로 끝난다. '만주 땅은 우리 것'이란 말과 '고려대학교'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말이다. 고려대학교란 교명은 만주 땅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영화와 기상을 꿈꾸며 작명된 것이다. 이 노랫말은 고려대학교의 정신을 함축하고, 동시에 우리나라의 찬란한 역사와 기개 있는 민족정신을 담고 있다. 고대의 강력한 정체성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우리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성을 지니는 것이다.

'찬가'는 어떤 대상을 찬양, 찬미하는 노래이다. 한 집단이 어느 한 대상을 일제히 찬양할 때 그 구성원들은 강한 응집력과 결속력을 갖는다. 고려대학교는 그런 '찬가'를 소유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고대인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 여기서 찬양의 대상은 '막걸리'인데, 그것은 한국인에게 술이면서 음식이다. 그것도 토속주이자, 토속 음식이다.

그러니 막걸리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때 그 집단은 하나가 되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막걸리 찬가〉는 고대의 응원가이면서, 민족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막걸리 찬가〉가 익명의 고대인에 의해 집단 창작된 대중적인 작품이라면, 〈고려대학교〉란 시는 고려대 교수이자 유명 시인인 오탁번에 의해 창작된 예술성 높은 문학작품이다. 이 시는 예리한 시적 관찰과 뛰어난 문학적 이미지로 고대의 강한 정체성과 보편성을 드러낸다.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다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 정문에는 커다란 동판 문패가 구릿빛 찬란하게 붙어 있어서
누구나 그 대학의 이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고려대학교 정문에는 문패가 없으니 이 대학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것 참 이상하다 이름도 없는 대학의 이름을 모두 다 안다는 듯
아무도 이 대학의 이름을 물어본 사람도 없다


고려대학교의 정신과 의식을 비유와 상징의 언어로 드러낸 문학작품들은 고대가 지닌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고, 동시에 우리나라의 문학적 자산이다. 고대의 강한 정체성과 보편성의 유지엔 이런 문학작품의 생산과 축적이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INTERVIEW

30년 이상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지내 온 고형진 명예교수는 올봄, 고려대학교의 무형적ㆍ 유형적 유산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고대만의 풍물과 문화를 소개하는 《안암동 블루스》(고려대학교출판 문화원)를 펴냈다. 가을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한 어느 날, 고형진 교수의 연구실에서 고려대학교와의 인연과 대학의 의미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오탁번 교수의 제자, 백석 연구의 권위자로

고형진 교수는 우리 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교우이기도 하다. 대학생 고형진에게 문학의 참 재미를 느끼게 한 스승은 시 〈고려대학교〉를 지은 오탁번 교수다. 오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국문학의 매력에 빠진 고형진 학생은 1981년,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 '백석' 시인을 만나 그의 작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월북 작가인 그의 이력 때문에 작품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백석 전문가로서 《정본 백석 시집》과 여러 연구서, 시어 정리 사전 《백석 시의 물명고》를 출간하는 데까지 이어진 고 교수의 작업은 한국 문학 연구의 한 획을 그었다.

안암동 블루스 표지

《안암동 블루스》(고려대학교출판 문화원, 2024)

《안암동 블루스》, 고대의 유산을 말하다

올해 2월, 정년 퇴임과 더불어 출간한 《안암동 블루스》는 오롯이 고려대학교에 헌정하는 책이다. 1부에서는 고려대학교가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2부에서는 고대의 스승들과 교가, 도서관에 대한 회고적 에세이를 실었다. 그가 다룬 여러 문학과 노래, 건축물에는 모두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어 학교의 역사와 문화를 전승하는 유산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백원만 아저씨'와 '거닐리우스'에 관한 전설도 그 유산에서 찾을 수 있는 고대만의 이야기들이다.

"고대 정문 앞 지하도에 걸인이 한 명 있었어요. 무려 수십 년 동안 말이죠. 아주 초라한 행색으로 다리를 떨면서 '100원만'이라고 구걸했는데, 500원을 주면 400원을 꼭 거슬러 줬어요 .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 '백원만 아저씨'가 됐고, 나중에는 '원만이 아저씨'라는 친근한 별명도 생겼죠. '원만이 아저씨한테 구걸을 당한 사람은 성공한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고요. 또 다른 인물은 계속 걷기만 하는 '거닐리우스'였어요. 말을 붙여도 절대 말을 안 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캠퍼스를 걸어서 붙은 이름이죠. 사복 경찰인지, 사색하는 철인인지, 사법고시 낭인인지··· 숱한 전설이 떠돌았어요."

요즘 캠퍼스에서 '백원만 아저씨'나 '거닐리우스' 등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 교수는 대학이 이전에는 세속으로부터 분리된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성격이 약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 대학은 비세속적이고 신성화된,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사색하는 사람들이 거닐러 오기도 한 거죠. 그런데 지금은 대학이나 도심의 세련된 거리나 비슷해 보여서, 기인들이 굳이 대학을 찾아올 필요가 없어졌다고 생각해요."

고려대학교에서 미래의 동력을 찾기를

고 교수는 퇴임 후에도 '한국 현대시 산책' 수업을 맡아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제자들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간다고 느끼지만, 고려대학교의 지붕 아래 한 가족으로서 학교의 풍성한 유산을 누리기를 바란다.

"지금 대학생들이 사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기에, 제 삶의 경험과 지식으로 학생의 삶에 대해 조언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하고 싶은 말은, 고려대학교는 우리 근현대사를 통과한 기관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이 다녀간 곳이라는 거예요. 그들이 머물면서 주옥같은 문학 작품과 기록물들을 남겨 놓았고요. 이런 문화적 자산은 우리 미래에 필요한 상상력의 단초와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기에, 중요한 원천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안암동 블루스》에 담긴 염원처럼 고려대학교의 정신과 문화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전달되어, 어제·오늘·내일의 고대 가족들을 연결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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