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대 총장 정진택 취임사

     제 20대 총장 정진택 취임사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김재호 이사장님을 비롯한 법인 관계자 여러분

이학수 회장님과 35만 교우 여러분

존경하는 동료 교수님과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자랑스러운 4만여 재학생 여러분.

 

저는 지금 고려대학교 제20대 총장에 취임하는 식전에 서 있습니다. 우선 저를 선출해주신 법인과 교우 그리고 동료교수 직원 학생 등 모든 구성원분 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또한 지난 4년 동안 헌신적으로 학교를 위해 애써 오신 염재호 총장님께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오늘 저는 참으로 경건하고도 겸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앞으로 고려대학교 총장으로서 감당해야 할 엄청난 무게와 비교할 때 본인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광에 앞서 먼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뼈를 가루내고 몸을 조각내는 분신쇄골(粉身碎骨)의 마음으로 진심갈력(盡心竭力) 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교육구국의 건학이념과 자유 정의 진리의 교훈, 그리고 공선사후와 신의일관의 고대 정신을 받들어, 고려대학교 총장으로서 주어진 모든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국운이 저물어가던 1905년 우리 민족이 자력으로 만든 이 나라 최초의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입니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려대학교는 민족지성의 총본산으로,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역사의 고비마다 새로운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면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고 또 인류의 앞날을 열어 왔습니다.

 

국권을 찬탈당한 그 암울한 상황에서 교육구국의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난 우리 고려대학교는 마침내 조국독립과 민족광복을 이루어 냈습니다. 해방 후에는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워 ‘한강의 기적’을 창출하고 불의와 불법에 의연하게 맞서 정의의 길을 밝혀 왔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는 신화를 쓰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또 연구와 연찬을 통해 진리를 밝히는 데에서도 앞장섬으로서 세계 최고수준의 ‘학문의 전당’ 으로 도약해 왔습니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여 인류사회의 발전과 번영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민족의 대학을 넘어 세계의 명문대학 즉 글로벌 선도대학으로서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대학의 이 찬란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은 그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개교 이래 수많은 선현들과 선배들이 오로지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노력해 온 결과일 것입니다. 이용익 선생, 손병희 선생 그리고 인촌 김성수 선생으로 이어지는 설립자들의 숭고한 건학정신과 역대 총장님들의 탁월한 리더십 그리고 교직원과 교우 등 수많은 고대가족의 무제한의 사랑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의 고려대학교는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찬란한 역사와 전통을 승계 발전시켜야 하는 새 총장으로서 실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과 여러분의 탁월한 통찰력과 예지를 등에 업고 힘차게 새 역사의 대장정을 열어가고자 합니다. 항상 마음과 귀를 크게 열어놓고 여러분의 의견과 제안을 수렴해 나갈 것입니다.

 

존경하는 고대 가족 여러분

 

지금 세상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대혼란과 격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의 패러다임이 총체적으로 흔들리는 그야말로 격랑의 한복판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민족의 전통을 이어오던 우리의 선조들이 구한말 느닷없이 식민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이 같은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제대로 꿰뚫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도 훨씬 더 크고 광범위한 시대적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찍이 역사학자 토인비는 변화 순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승자와 패자가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우리 고려대학교는 언제나 혼미한 세상의 중심을 잡아주고 불확실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사의 등불이 되어왔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하여 온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다시 한 번 미래를 향해 용기를 내야할 때입니다.

 

존경하는 고대가족 여러분

 

오늘 저는 고려대학교 제20대 총장으로서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비전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 중심의 고려대학교- 창의적 미래인재 양성, 세계를 변화시키는 대학’을 제안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첫째 ‘창의고대(創意高大)’의 기치를 높이 세울 것입니다.

 

대학은 모름지기 시대를 선도하는 학문적 가치와 인류를 위한 사회적 가치를 세우는 곳입니다. 새로운 가치는 창의(創意)에서 나옵니다. 창의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찾아내거나, 이미 존재하는 생각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조합해 내는 것입니다. 또는 그와 연관된 정신적 사회적인 과정을 모두 통괄하는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 대학들은 스스로 새로운 가치와 기법을 개발하기 보다는 선진 학문을 받아들이는 데에 급급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늦게 시작한 후발 주자로써 앞서가는 문물을 모방하고 수정 개량하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추종형 모델로서는 성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때 고도성장의 대명사로 전 세계로부터 추앙을 받았던 한국경제가 십 수년째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답보하고 있는 것이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여전히 후진적 갈등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와 교육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따라 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반성해 봅니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로의 전환을 가장 먼저 제기한 클라우스 슈밥은 오로지 1등만 살아남는 세상이 오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론과 원리를 앞장서 개발해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고려대학교의 캠퍼스 문화를 창의적으로 환골탈태시키는 것입니다. 교과과정에서부터 강의와 연구는 물론이거니와 학사 행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 혁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통합과 통섭의 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고 학과 이익을 먼저 앞세우며 내 편과 네 편을 따지는 편협한 자세로는 초 연결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그리고 로봇 등의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여러 학문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에 그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습니다.

 

이중전공과 융합전공을 활성화하고 전공을 넘나드는 다양한 교육과 입체적 연구 환경을 조성해 가겠습니다. 다 학제 간 융합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소통의 채널을 마련하고, 사회적 니즈를 해결하는 실용적 연구에 더욱더 매진하겠습니다.

 

셋째, 도덕적 인간을 양성하는 데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우리 고려대학교에는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익을 더 앞세우는 이 공선사후는 영원한 스승인 인촌 선생의 가르침이자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남을 돕는 것이 정의의 시작”이라고 갈파했습니다. 로마가 천년이상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 바로 이 처럼 도덕적 인간을 많이 배출한 데에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 공헌 교육과 체험을 통해 나눔과 봉사라는 가치가 학생들에게 가슴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도하겠습니다. 학문과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하면서 기계가 인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계 문명의 일탈방지와 선한 사용을 위해서도 도덕적 인재의 양성은 우리 인류가 당면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저도 총장으로서 도덕적 정당성과 논리적 합리성을 가지고 학교를 운영해 가겠습니다.

 

넷째,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고려대학교가 되겠습니다.

대학의 국제화는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세계인들이 마음 놓고 찾아오고, 우리 학생들이 당당하게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춘 대학이 되겠습니다. 또한 매일 매일 생산되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ICT 환경의 캠퍼스를 구축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 중심의 고려대학교를 만들어가겠습니다.

효율과 능률을 앞세우는 현대사회에서는 목적이 되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수단으로 전락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됩니다. 사람을 위한 제도와 시스템이 오히려 사람을 옥죄는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나 조직의 최종적인 목표는 결국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고려대학교에는 참으로 많은 인재들이 있습니다. 구성원 모두의 아이디어와 지식이 마음껏 발현되고 구성원 모두의 가치가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한 사람 한사람의 개성과 가치를 존중할 것입니다. 또 그 성과가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람중심의 행정과 사람중심의 교육을 구현해 나가겠습니다. 열린 소통으로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고대가족 여러분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사서인 국어(國語)에 중심성성 중구삭금 (衆心成城 衆口鑠金)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을 모으면 대업을 이룰 수 있지만 흩어지면 그렇지 않다는 교훈입니다. 지금은 다시 지혜를 모으고 미래를 향해 함께 도전해야 할 때입니다. 저는 이 어려움을 우리 구성원들과 함께 힘을 합쳐 현명하게 헤쳐 나갈 것입니다.

 

114년 전 우리의 선배들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교육구국의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난 것처럼 우리 함께 ‘창의고대’ ‘사람고대’ ‘화합고대’로 다시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열어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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