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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속에서 찾은 가치를 나누다 - ‘2018대한민국인재상’ 수상한 채홍윤 학생(통일외교안보
  • 글쓴이 : 고대TODAY
  • 조회 : 2233
  • 일 자 : 2019-06-07


Frontier News
고난속에서 찾은 가치를 나누다
- ‘2018대한민국인재상’ 수상한 채홍윤 학생(통일외교안보전공 16)

 


그는 이른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인재란 무엇인가, 통일이란 무엇인가, 좋은 세상이란 무엇인가…. 불우한 가정형편 탓에 온몸으로 외로이 서른 살의 강을 건너온 그가, 말이 아닌 삶으로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한 그는 남들보다 깊이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왔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향한 도전을 계속해온, 어느 아름다운 청년의 이야기.

공감에서 치유로, 치유에서 성장으로

그는 사전적인 의미의 ‘인재’는 아니다. 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기보다,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꿈이 눈부신 사람이다. 그 때문일까. 2018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그는 자신의 수상에 대해 있는 힘껏 몸을 낮춘다. 그 낮춤이 여간 미덥지 않다. 그의 꿈은 ‘낮은 곳’의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낮춤은, 잠깐의 포즈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상의 명성에 비해 제 성과가 너무 미미해요. 그래서 부끄럽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노력하려 해요.” 그의 ‘성장사’는 말 그대로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점심 급식 한 끼가 전부인 날이 많았고, 중학교 때는 집이 경매되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하루하루 생존이 시급하던 그 시절 그는 생각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열심히 공부해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의 곁에 자신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정 형편 때문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대신 학비를 면제해주는 공군항공과학고에 들어갔죠. 졸업 후엔 공군 관제사로 복무했어요. 그 학교를 졸업하면 7년간 공군에 복무해야 하거든요. 관제실에서 모니터로 군사분계선을 지켜보던 어느 새벽에 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왜 우리는 이토록 많은 인력과 자원을 서로 싸우는 데 사용하고 있을까’ 통일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관련 자료를 찾아보던 어느 날, <천국의 국경을 넘다>라는 3부작 다큐멘터리를 봤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들을 다룬 그 작품엔 분단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겨있었다. 7년 반의 직업군인 생활을 마치고, 2016년 고려대 세종캠퍼스 북한학과에 입학했다. 안정된 직장을 버린다는 두려움보다, 사회에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입학 뒤엔 탈북청소년 교육봉사 동아리 ‘WOORI’에서 2년간 자원봉사를 했다. 처음엔 한국어와 수학을 탈북청소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낯선 땅에서 겪는 감정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거였다. 곧바로 과목을 바꿨다. 미술과 체육, 과학실험 등 ‘놀이’에 가까운 수업들을 함께하면서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다. 자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과거 자신이 받고 싶었던 도움을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건네는 일. 그것이 그대로 치유의 과정이었음을 그는 이제 안다. 공감에서 치유로, 치유에서 성장으로. 어느새 ‘꽃길’로 접어든 셈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소원

“북한이탈주민은 ‘먼저 온 통일’이에요. 그들을 통해 북한을 알고 통합을 미리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봉사활동을 했던 학교엔 북한이탈주민인 어머니가 중국에서 결혼해 낳은 탈북청소년이 대부분이었어요. 우리가 막연히 상상했던 탈북청소년과 그들의 현실은 너무나 달라요. 그들을 실제로 만나서 ‘작은 통일’을 경험하는 게 그래서 중요해요.”

그는 헌법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정치안보 분야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공교육 과정을 버거워하는) 탈북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공교육 과정 신설, 통일 관련 교과목 시행…. 열심히 시도했지만 성공시키지는 못했던 정책들이다. 하지만 실망은 그의 것이 아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 있다면, 그게 뭐든 열심히 도전해 나갈 생각이다. 그의 꿈은 모두 세 가지다. 1단계 꿈은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인권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3만 명의 북한이탈주민을 품지 못하면 3천만 명 북한주민과의 화합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단계 꿈은 ‘사회적 기업’ 로펌을 설립하는 것이다. 같은 비전을 가진 변호사들과 힘을 합해 남북교류협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쟁해결에 앞장서고 싶다. 지역 내 소외된 이웃들을 직원으로 우선 고용하고, 일정 수익을 환원에 지역사회에도 기여할 생각이다.

3단계 꿈은 통일 한국에 맞는 법과 제도를 연구해 우리사회의 틀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1단계와 2단계에서 쌓은 역량을 3단계로 확장해나갈 생각이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요즘 한창 입시준비를 하고 있어요. 실은 생활의 무게 때문에 더러 흔들려요.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보다 저를 더 힘들게 하는 건 꿈을 포기하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꿋꿋이 가보려 해요.”

환하게 웃으며 그가 돌아선다. 훗날 더 나은 세상이 되면, 저 미소를 떠올리게 될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