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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KU]고연전의 근현대사
  • 글쓴이 : SPORTS KU
  • 조회 : 2465
  • 일 자 : 2018-09-19


SPORTS KU
고연전의 근현대사

 


 

‘무등산 폭격기’,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별명과 KBO 통산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 자책점 1.2의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선동열(경영81)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감독. 그런 그에게도 대학 시절 정기 고연전은 매우 떨리는 무대였다. 2학년이었던 시절, 처음으로 선발 마운드에 올라섰던 고연전 경기가 같은 해 참여했던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보다 더 긴장됐다고 한다. 경기장 내 호루라기 소리를 압도하던 뱃노래는 현주엽(경영94) 프로농구 창원 LG 감독에게 아직도 가슴 뛰는 고연전의 그 날들로 남아있다. 우리나라 체육계 거장들도 함께한 정기 고연전은 열정적인 분위기 속 긴장감 넘치는 무대로 기억되고 있고 그 모습은 여전히 계승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기 고연전의 응원 분위기는 일본의 게이오 대학과 와세다 대학 사이의 소케이센(早慶戰)이나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사이의 조정 경기의 분위기와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다. 많은 학우가 열광하고 고대하는 두 학교 사이의 치열한 경쟁, 정기 고연전은 어떤 역사를 갖고 현재의 모습까지 이르게 됐을까?



고연전의 시작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역사적인 첫 맞대결은 1925년 5월 30일에 이루어졌다. 조선 체육회가 주최한 제5회 전조선 정구대회에서 보성전문학교(現 고려대학교)와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가 맞붙은 것이다. 1927년 두 학교는 처음으로 축구 경기를 개최했으며 이어 1930년 농구 종목에서도 만나 열렬한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1942년까지 보성전문학교가 연희전문학교 상대로 축구에서 31전 17승 14패, 농구에서 62전 30승 32패로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이때 처음으로 보연전(연보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고려대 학생들은 안암동에서 동대문 운동장까지 꽹과리와 징을 울리며 행진했으며, 경기에서 이긴 학교는 종로 네거리까지 우승기를 들고 교가를 부르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하지만 1943년 징병제가 시행되며 정기전이 잠시 중단됐었고, 1945년 광복이 찾아옴과 동시에 같은 해 12월 ‘제1회 OB 보연전’을 통하여 정기전이 부활하게 된다. 1959년 기존 정기전에서 진행되던 축구와 농구에 럭비, 야구, 아이스하키 종목이 추가되었으며, 1965년에는 첫째 날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가 둘째 날에 럭비와 축구가 진행되는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정기 고연전

1965년 축구, 야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 5개 종목으로 확대된 이후 고연전은 2018년 올해 48회째를 맞이한다. 또한 1925년 보성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의 첫 맞대결을 시점으로 보았을 때 90년을 넘어 100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 역사 속에는 많은 우여곡절이 숨어있다. 광복 이전, 징병제로 인하여 어두운 상황 속에서 민족주의를 표출할 수 있었던 수단인 스포츠 자체가 사라질 뻔 했다. 하지만 양교는 광복 이후 민족의 혼을 되살리기 위해 스포츠 재건을 목표했다. 그 덕분에 보연전은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 됐다. 이후 정식 명칭도 정기 고연전(연고전)으로 변경되고 야구, 럭비, 아이스하키 종목이 추가됐다. 또한 당시에는 프로스포츠가 없어 일반인의 관심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5․16 군사 정변과 기타 이유로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다. 1971년, 1972년, 1975년, 1980년, 1983년에는 대학생이 마음껏 젊음과 패기를 부릴 수 있었던 고연전이 자칫 시위로 이어질까하는 당시 정부의 생각으로 인해 고연전은 잠시 쉬어가야만 했다. 1985년 고연전의 명칭은 ‘고연민족해방제’로 변경되며 사회 풍자를 이끄는 영상제, 학술제 등 다양한 활동이 추가됐다. 당시 운동경기가 끝나고 승리를 자축하고 시위가 이어졌는데, 여러 학생들이 팔짱을 끼고 일렬로 서있었으며 시위 진압을 피하고자 술집이나 음식점으로 다 같이 피하곤 했다. 

이때 상점 주인들이 학생들에게 음식과 술을 나눠줬다고 하는데, 이것이 고연전이 끝나고 뒷풀이에서 진행되는 기차놀이의 시발점이라는 추측이 있다. 그리고 2005년, 고연민족해방제에서 다시 고연전으로 정식 명칭이 변경되며 다시 운동경기 중심의 축제가 됐다. 

 


 

정기 고연전의 역사는 계속 흐르고 있다

2010년 이후 정기 고연전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다양한 양상과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국내에 e스포츠가 유행하면서 정기 고연전에서도 5개 종목 경기가 끝나고 연장선으로 사이버고연전을 진행한다. 2011년부터 매년 두 학교는 특정한 게임 종목으로 대결을 하며 매년 유행에 따라 진행되는 게임 종목이 조금씩 변경된다. 고려대가 11년부터 17년까지 4승 1무 1패의 압도적인 전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2013년에는 MBC 무한도전 응원단 특집으로 무한도전 멤버가 참여했다. 고려대 응원단에는 유재석, 박명수, 하하, 정준하가, 연세대 응원단에는 노홍철, 정형돈, 길이 참가하여 정기전을 같이 했다. 멤버들은 여름동안 양교 응원단들과 같이 훈련한 후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응원을 진행했다.

2014년 정기고연전 역사상 처음으로 고려대가 5종목 전승을 하게 된다. 특히 아이스하키 종목은 1998년부터 2013년간의 15년 연속 무승이라는 불명예를 깨트림과 동시에 5:0이라는 결과를 학교에 가져다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역사적인 정기전을 기념하고자 교내 제빵점인 고대빵에서는 ‘오대빵’이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역대 최초의 5종목 전승이라는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7년, 이번에는 연세대가 5:0으로 전 종목에서 승리하며 설욕에 성공했다. 전례 없는 기록이 4년 간 2번이나 발생한 것이다.

운동부 구성원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농구 레전드 주희정(체교95)이 프로를 은퇴하고 2017년 9월에 고려대로 재입학을 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2학년 때 고려대를 중퇴하고 프로선수로 데뷔 후 KBL 최초의 신인상부터 통산 20시즌과 1000경기 출장까지, 국내 농구계의 한 획을 그었던 그가 학교로 돌아옴과 동시에 농구부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올해 초 김성민(경영96)감독이 고려대 아이스하키부 새 사령탑으로 임명됐다. 현대오일뱅크스와 하이원에서 골리로 활동, 이후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코치 및 하이원 골리 코치로 활약했던 그가 교내 아이스하키부 감독을 맡게 되며 선수들을 이끌게 됐다. 과거 고려대 선수로 뛰었던 주희정 농구부 코치와 김성민 빙구부 감독, 그들은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와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활동하게 됐다. 이 외에도 현재 5개 운동부 코칭스텝은 모두 고연전을 직접 경험한 고연전의 과거이자 현재다.

 



과거의 아픈 역사 속에서 민족의 혼을 지탱해주었던 고연전은 시간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음과 동시에 색다른 결과도 맞이하고 있다. 현재 고연전은 두 대학 간의 양보할 수 없는 승부이며 선의의 경쟁을 통한 화합의 장이다. 목이 잠길 때까지 응원하고 결과를 즐기며 다른 학우들과 고연전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는 흐르고 있는 고연전의 역사 중 일부다. 과거에 선수로 활약했던 이들이 지도자로 돌아오기도 하고, 재학생은 졸업생이 되어 돌아와 변치 않는 응원을 보여준다. 학우들의 열정과 응원으로 이루어진 고연전의 역사는 계속 흐르고 있다.

 

글: 박시우
사진: SPORTS KU DB/ 호영회 제공
[출처: SPORTS KU, SEP VOL.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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